우리나라에는 현재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위원회가 있다. 한마디로 ‘위원회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보다 발전했다고 하는 선진국에서도 과연 그런가가 의문이다. 사실 1960년대에 군사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위원회라는 조직이 극소수였으며, 이 낱말을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너무 오랜 동안 나라를 다스리는 가운데 이것저것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때로는 중지를 모으는 방법으로, 때로는 면피용으로 위원회라는 조직체를 남발하는 관행이 점차 굳어져 왔다고 짐작된다.
이명박정부의 초기 인수위원회에서는 참여정부에서 그 수가 52개나 늘어나 모두 416개에 이르는 각종 위원회의 대대적인 수술을 가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다만 법적 근거도 없이 마구 생기는 각종 위원회에 관하여 “운영의 민주성·투명성·효율성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행정기관위원회법)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은 2008년말의 일이었다. 이러한 위원회의 하나인 ‘세제발전심의위원회’(약칭: 세발심)가 최근에 열린 날짜는 지난 6월 30일이었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기획재정부 산하의 이 세발심은 올해가 제51차이었으므로, 역사가 꽤 오랜 셈이다. 이같은 위원회의 법적 성격은 세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자문기관의 성격이다. 이는 해당 집행기관의 요구가 있을 때 또는 자진하여 어떤 사항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기관을 말한다. 그 둘은 집행기관의 성격이다. 이는 행정의사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외부에 표시하여 집행하는 권한까지를 가진 기관을 말한다. 그 셋은 의결기관의 성격이다. 이는 그 결정이 법률상 해당 행정청을 기속(羈束 / ‘얽어매어 묶음’)하는 힘을 가진 기관을 말한다. 그렇다면 세발심의 성격은 무엇인가. 이것이 집행기관이나 의결기관의 성격을 지녔다는 법리적인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결국 이는 자문기관에 해당한다는 결론이며,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도 그러하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격의,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의 수립을 자문하는 ‘조세정책심의위원회’라는 것이 운용되기도 한다. 이는 ‘경제·재정여건 변화를 충분히 반영한’ ‘향후 조세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간헐적으로 조직되는데, 최근에는 2017.4.7. 세발심처럼 기획재정부의 주관으로 열린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세발심은 해마다 열리므로, 국세(내국세와 관세)에 해당하는 조세법의 단기적인 개정에 대비하는 자문기관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행정안전부의 주관으로 지방세법제의 단기개정에 대비하는 역시 자문기관의 성격인 지방세제발전위원회라는 것이 따로 열린다. 어쨌건 세발심은 연례행사로 열리며, 기획재정부에서 마련하는 해당 연도의 세법개정안을 심의한다. 이것에 위촉된 위원수는 해마다 늘어 금년에 발표된 인원은 65명이나 된다. 문제는 이렇듯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여 단 한나절 열리고 마는 회의가 얼마나 생산적이냐 하는 점이다.
유명한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이와 같은 별로 도움도 안되는 위원회를 조그마한 낙타머리에 커다란 몸통의 코끼리라는 뜻으로 ‘카멜리펀트’(cameliphant=camel+elephant)라 비꼰 적이 있다. 우리의 세발심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음미해 볼 일이다. 요즈음에는 전경련이나 상공회의소 외에도 조세법을 연구하는 한국세무학회 등의 학술단체에서 해마다 수 백건에 이르는 세법개정건의안을 내놓는다. 이것들을 반영하여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에서 관계법안을 손질하여 위 위원회에 상정한다. 여기에서 한 사람이 5분 정도 발언을 마치면 통과를 보는 실정이다. 명분축적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발심이 이와 같은 카멜리펀트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일본의 ‘세제조사회’와 같은 의결기구 성격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적어도 3년 정도 앞선 시점에서 국민경제의 발전을 선도하는 비교적 원대한 목표 아래 깊이있는 성찰을 거쳐 알찬 세법개정방안을 마련토록 할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와 같은 뒷북이나 박수만을 치고 마는 내실이 없는 자문기관 성격의 세발심은 발전적인 해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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