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대표연설을 했던 여당의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표현 한 구절이 빌미가 되어 결국 ‘배신자’이며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찎혀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여파로 2016년의 4.13. 선거에 나설 여당의 후보로 공천조차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을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증세 없는 복지’를 추진하겠다던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괘씸죄’에 해당한다는 얘기도 된다. 복지는 ‘모든 사람이 풍요롭고 행복을 느끼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국적인 과제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이 과제를 수행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재정(돈)이 조달되어야 한다. 말로만 외치는 복지는 그야말로 허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조달을 원활히 하려면 그에 필요한 세금을 그만큼 더 거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OECD 가입국 중에서 복지수준이 비교적 낮은 나라에 속해 있었다. 이것이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정치쟁점으로 떠올라 ‘선택적 복지’를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복지’라야 하는가 등등의 복지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건 복지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이 모든 국민의 뇌리에 박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복지의 내용이야 어떻든 복지의 추진은 피할 수 없는 정책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서 세금을 더 거둔다는 뜻의 증세(增稅)가 없이도 과연 복지정책의 추진이 가능한가에 관한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증세 없는 복지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을 믿고서 국민들이 표를 몰아주는 계기가 마련되어 현재의 정부가 탄생했다고도 여겨진다. 그러한 위력이 넘쳤던 공약을 허구라고 평가한 장본인이 팽개질당한 것은 당연한 업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과 같은 발언 하나가 정부를 떠받치는 여당에서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 등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당연한 정책논의는 실종되어 버리고 계파갈등만이 진동하는 한심한 작태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정말 아쉬운 대목은 왜 진작에 증세의 개념을 재정리하여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생각건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대통령후보에게 가르쳐 준 인사들은 ‘증세’를 세율이나 과세표준을 높이는 개정이 없는 한에서는 증세가 아니라고 보자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하경제의 비중이 25%에 달한다는 몇몇 연구기관의 분석이므로, 탈세부분만을 잘 다스린다면 세법의 개정이 없이도 필요한 재원의 조달은 상당한 정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법을 건드리지 않고서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는 이론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국가 전체의 세수가 늘어나면 그것은 곧 증세라는 원리를 무시한 억지논리이다.
실제로 현재의 정부가 들어선 후 종전에 비하여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줄기차게 결행한 탓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시달림을 받아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강력한 세무조사는 세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을 옥죄는 세무조사는 차라리 세법을 개정하여 세수를 늘리는 방법보다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특히 국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제조업체를 괴롭힌다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이명박정부 시절에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것과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35%에서 33%로 낮춘 것을 원점으로만 되돌렸다면, 복지재원의 조달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앞것은 연간 법인소득이 2억원을 넘는 경우(대부분의 중소법인은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에만 적용되며, 뒷것은 연간 소득이 8천8백만원(소득공제 등을 고려하면 1억원을 훌쩍 넘는 소득자들이다)을 초과하는 개인만이 해당하므로, 부자감세라는 비판에 잘 대처할 수도 있었다.
정부는 이번 총선이 끝난 후라도 서둘러 증세의 개념을 수정하고서 국민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복지수요를 쉬운 방법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설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공약은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바꿀 수도 있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