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근(세영세무법인 고문‧경영학박사)
차명계좌는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가 매출을 숨겨 탈세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리고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의 편법․ 불법적인 증여․ 상속, 비자금 조성, 뇌물․ 마약․ 밀수․ 주가조작 등 각종 불법자금을 숨기는 데도 광범위하게 이용돼 왔다. 차명계좌는 불법과 탈법의 온상이고 ‘지하경제의 주범’이다.
박근혜 정부는 5년간 134조5000억원(연간 27조원)이라는 대규모 재원이 들어가는 복지공약을 실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복지재원의 60%를 세출구조조정으로, 나머지 40%를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원 확대로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위 증세 없는 복지재원 확보방안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복지재원을 확보하려면 탈세 수단이고 온갖 탈법과 불법의 온상인 차명계좌부터 차단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이 신설돼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 제4항에 의하면 자금소유자가 차명계좌에 자금을 입금한 경우 입금된 시점에 차명계좌 명의자가 입금자로부터 자금을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예컨대 부친이 자녀명의의 계좌를 사용하면서 3억 원을 입금한 경우 과세관청은 입금 시점에 자녀가 부친으로부터 3억 원을 증여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자녀가 차명계좌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자녀에게 증여세 4천4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이 신설되기 전에는 과세관청이 차명계좌 명의자가 자금을 인출하여 부동산 취득 등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었다. 증여세 과세요건의 ‘입증책임’이 과세관청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차명계좌에 자금이 입금된 시점에 과세관청이 증여로 추정한다. 이 경우 증여받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차명계좌 명의자가 입증해야 증여세 과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부분 현금으로 입출금되는 차명계좌 속상상 이를 입증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은 납세의무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법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의 적용 시기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부칙 제4조(2013.1.1. 법률 제11609호로 개정된 것)에 의하면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은 2013.1.1이후 증여세를 신고하거나 경정 또는 결정하는 분부터 적용한다. 증여세 부과제척기간은 증여세를 무신고하거나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증여세를 포탈한 경우 신고납부기한일(증여받은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부터 15년이다. 즉, 과세관청이 자금소유자가 차명계좌에 자금을 입금한 사실을 입금시점으로부터 15년 이내에 안 경우 증여추정 규정을 적용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 치명계좌 명의자는 명의를 빌려준 날부터 15년이라는 장기간 증여세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세기본법 제18조 제2항은 “국세를 납부할 의무가 성립한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에 대해서는 그 성립 후의 새로운 세법에 따라 소급하여 과세하지 아니한다”고 ‘소급과세금지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에 대한 증여세 납세의무는 차명계좌에 자금을 입금한 날에 성립한다. 그러므로 차명계좌 증여추정 규정(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 제4항) 시행일(2013.1.1) 전에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에 증여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소급과세에 해당돼 위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계좌명의자가 직접 금융기관 창구에서 계좌를 만들고 그 계좌를 자금소유자에게 건네주는 차명계좌는 금융거래실명제가 시행된 후 20년이 지난 현재도 아무런 제약 없이 남용되고 있다. 차명계좌에 대해 아무런 규제가 없는 금융실명거래법의 허점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과거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에 증여세를 부과한다면, 당국이 차명계좌라는 덫을 처 놓은 후 걸려드는 국민을 잡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명계좌 사용은 근절돼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 관행과 신뢰이익을 무시하는 소급과세는 안 된다. 차명계좌 증여추정을 2013.1.1이후 차명계좌에 입금하는 분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것이 신뢰이익 보호와 소급과세금지원칙에 부합한다.
과세관청이 세금과 세무조사로 차명계좌 사용자를 옥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차명계좌 증여추정 과세와 함께 차명계좌를 규제하는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실효를 거들 수 있다.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차명계좌 명의대여자와 사용자 모두를 형사 처벌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거래법’을 강화해야 한다. 이래야 차명계좌 사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지하경제가 줄어들고 세수가 늘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