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교수, (사)한국지방세협회 회장>
다음 달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그리고 그 두 달 후에는 총선이 있고, 따라서 새 국회가 구성될 것이다. 이들 새 정부와 새 국회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로서는 일찍이 전례가 없는 크나큰 전기를 맞을 것이다. 밖으로는 외교면에서 동북아 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북핵 문제가 서서히 풀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적절한 위상을 찾아야 하는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안으로는 선진국을 지향하는 가운데 경기침체를 벗어나야 하고 고질화되어 가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여야 하며 각종의 부조리를 정상화하는 다면적인 계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제 개편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연례행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성질이 사뭇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육박하게 되었으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화두로 등장하는 마당에 종래의 낡은 세제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선 후보들이 내세웠던 화려한 공약을 실천하는 경제정책의 설계에는 그에 걸맞는 세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발 년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얼마씩이건 직접 납세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의 원칙에 충실한 세제를 지향하여야 한다. 그리고 조세정의(租稅正義)에 입각한 공평과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세제를 구상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패러다임(paradigm)을 확 바꾸는 새로운 세제의 설계(tax design)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지방자치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선진세제를 고려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현행의 세제로는 지방자치의 건전성이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보는 나라치고 지방자치가 활발하지 않는 예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치와 재정자치가 없는 지방자치는 참다운 지방자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재정자치에 관하여 좀더 살펴보자. 2007년만 하더라도 전 국민이 170조원 정도의 세금을 내게 되어 있었지만, 그 중의 8은 중앙정부의 세입인 국세로 징수되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 겨우 2 정도가 지방정부의 세입인 지방세로 징수되는 세금이었다. 지방세의 세목 수가 국세와 같은 16개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거둔 세금을 쓰는 재정지출을 보면, 지방정부 쪽에서 6을 쓰며 중앙정부 쪽에서는 4만을 쓴다. 그렇다면 지방은 그 받은 세금의 두 배나 되는 4만큼을 중앙에서 얻어다 쓴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2할 자치’이며, 막말로 하면 ‘구걸자치(求乞自治)’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자기가 쓰는 돈의 절반 이상은 스스로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지방세제로 당장 개편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재정책임성의 원칙인 것이다. 요컨대 지금처럼 대부분을 중앙에 의존하는 이른바 의존재원으로 이루어지는 지방자치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만 하더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1천만 명이 넘는 근로소득자의 48%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은 종합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는 소득공제의 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에 관하여 본다면, 공급가액에 10% 상당액을 얹어 받는 거래징수의 의무가 없고 따라서 세금계산서의 교부의무도 없는 간이과세자의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사실은, 세율의 높낮이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그만큼 많은 소매상들에게 탈세의 가능성을 법이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증권시장을 위축시킨다는 반대논리에 부딪혀 증권양도소득을 소득세 과세대상에 넣지 못하고 말았다. 그 결과 증권투자자들이 증권양도차익을 올리더라도 소득세(법인세는 다름)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농업소득세를 국세로 하지 않은 결과, 소비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값비싼 과일을 사먹는데도, 유통과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국세청은 높은 마진을 붙여 과일을 매매하는 도매상의 소득세 탈세에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술품에 대한 세제의 미흡으로 미술품시장의 왜곡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현행세제의 모순점을 들추자면, 한량이 없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우리의 세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세제의 구상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인 땜질식 개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틀을 다시 짜는 대폭적인 개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밀실에서 이루어지거나 과거처럼 재경부가 주도하면서 체면치레로 ‘세제심의위원회 심의’라는 절차를 적당히 거치고 마는 의전적인 것이 아니라, 전문가 및 실무자의 중지를 대대적으로 모음으로써 적정성과 종합성을 보장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것이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