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정부가 공약을 이행하는 데는 4년간 134조8000억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하경제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축소 등 세원확대로 50조7000억원의 세수를 늘리고, 나머지 84조1000억원은 세출 절감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부진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50조7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두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총 예산의 64%가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인데다 세출예산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예산 구조가 이런데 어디에서 어떻게 매년 21조원, 4년간 84조1000억원의 세출을 절감해 복지재원으로 돌린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국내총생산(GDP)의 30~40%대에 달하는 많은 세금을 내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는 유럽 재정위기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재정위기에 몰려 있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은 세금을 적게 거두고 빚을 얻어 복지를 늘리다 재정위기에 내몰렸다. 조세부담률(19.3%)이 낮은 가운데 복지를 늘려야 하는 우리나라는 남유럽 국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남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지를 늘리는 게 최우선 과제다. 경제성장률이 4~5%일 때 연간 늘어난 복지 예산이 5~6조원 정도였다. 앞으로 상당기간 2~3%대의 저성장에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데 통상적인 세 수입으로 매년 수십조원이 더 들어가는 복지재원을 감당하기란 어렵다. 획기적인 세제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세제개편에선 공평과 효율이란 조세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소득세를 강화해야 한다. 소득세는 세(稅) 부담능력의 지표인 ‘소득’이 커짐에 따라 높은 누진세율(현행 6~38%)이 적용되기 때문에 공평하면서 소득재분배기능을 가진 이상적인 세금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38%)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최고세율(35.8%)보다 높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6%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8.7%)에 비해 월등히 낮다.
세율은 높은데 세수 비중이 낮다는 사실은 과세대상에서 빠져 있는 소득이 많고 비과세‧감면이 방만함을 시사한다. 세율 인상보다 주식매매차익을 비롯한 자본이득 과세대상 확대, 불요불급한 비과세 ․ 감면 축소,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세 방지 등 세원을 확대해 소득세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세법 개정과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낮추는 ‘조세경쟁(tax competition)시대’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8%)을 웃돈다. 우리나라 법인세 부담률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 내국법인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 외자유치를 위한 효율성 측면에서 현행 법인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부가가치세율을 1% 포인트 인상하면 연 5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경제에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조세저항 없이 막대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성이 장점이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일부 정치권에서 보편적 증세방안으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율(10%)이 독일(19%), 영국(20%), 스웨덴(25%)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보다 월등히 낮은 것도 세율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납세자의 소득과 관계없이 소비금액에 단일세율(현행 : 10%)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이 소득에 비해 높은 세 부담을 지는 역진성(逆進性)이 최대 단점으로 꼽힌다.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은 비과세 ․ 감면축소, 간이과세제 폐지 등 부가가치세 세원확대와 고소득자 중심으로 소득세를 강화해도 재원이 부족할 경우 차선책으로 검토할 증세방안이다.
한편 세수확보와 부자증세를 내세워 ‘재산’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부유세(富裕稅)’ 도입을 주장하는 정치권도 있다. 하지만 조세저항 ․ 자본유출 등 부유세의 비효율이 최대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이유로 부유세 원조인 스웨덴을 비롯한 대부분 유럽 국가가 이를 폐지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조차 부유세 폐지를 권고할 정도로 구시대적 세금으로 전락했다. 부유세 성격인 종부세 도입으로 우리가 경험한 조세저항과 사회혼란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재산에 과세되는 세금은 지방세로 해서 다수 납세자에게 저세율로 과세하는 게 조세원칙에 맞다.
정부는 지난 8월 근로소득자 434만 명으로부터 연 1조3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거두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근로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증세 대상과 규모를 대폭 줄인바 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는 그대로 두고 왜 우리가 증세 대상인가라는 논리에 정부가 손을 든 것이다. 증세를 하려면 공평과세원칙에 충실하게 그 대상을 신중히 선택해야하고 당사자의 납득이 중요함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