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시장을 꼭 잡겠다는 공약을 내건 가운데 국회 본회의에서 부동산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부동산 3법(종합부동산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등의 관계조항)의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2020.8.4.의 일이다. 이에 관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후유증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상황이다. 조세법을 전공했다고 자부하는 필자로서는 미묘하게 느껴지는 자괴감을 떨려버리기 어려운 심경이다.
정말로 세법이 이렇게까지 뚜렷한 철학이나 기본이 없이 마구잡이로 손질되어도 좋을 일인가 그리고 세법이 정치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도 되는 것인가? 또한 세법이 과연 시장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이들 모두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난제들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나서 마지못해 일본법을 답습하여 이것저것 짜깁기식으로 만들어 시행하던 조세법을 그나마 독자적이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로 정리한 전면개정의 조세입법은 1975년부터 1977년까지에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까지도 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소득세 종합과세를 위한 소득세법과 그 밖에 법인세법이나 상속증여세법 및 여러 간접세법들이 1975년 시행의 조세법률로 공포되고 시행되었다. 그리고 부가가치세법만은 준비부족으로 1977.7.1.에야 비로소 공포시행되었다.
이처럼 3년에 걸쳐 공포시행된 새로운 조세법의 제정과정에서 졸속이라고 평가될 정도는 아닐지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는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당시에 조문화작업을 진행한 재무부 당국자들은 거의가 대학에서 체계적인 법률공부를 하지 못한 비법학도들로서 세무공무원의 근무경력만이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부가가치세법의 담당책임자는 법학도이었지만, 5년 정도의 짧은 경력에다 세무조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무경험자이었다). 필자는 조세법을 전공하였다고 하지만, 석사학위논문은 상법으로 쓴 것이었다(1969년). 필자보다 먼저 대학에서 세법을 강의한 S대의 모교수는 미국에서 회사법을 전공한 분이었다. 그러므로 필자의 기억으로 위 1975년 세법개정이 추진될 무렵에는 조세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사가 조야를 통틀어 한 분도 없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학계에서는 조세법의 축조심의에 보탬을 줄 수 있는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이었다. 거기에다 조세정책면에서 기여할 만한 재정학교수는 국내사정에 어두운 외국박사들 뿐이었다.
한마디로 조세법의 입법에서는 8·15 이전에 이미 유진오 박사(전 고려대 총장)께서 헌법 초안을 마련하여 두었으므로, 제헌국회의 헌법이 쉽게 제정된 바와 같은 뒷받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만이 있을 뿐 이론적인 토대가 없는 당국자들이 조문을 적당히 꿰맞추는 조세입법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과정에서 철학과 기본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몇몇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소득세법상의 1세대1주택비과세제도를 들 수 있다. 당초에 1세대당 1주택에 대하여 일정금액을 소득공제로만 인정하였다면, 주택을 투자대상으로 여기거나 좁은 땅에 호화주택이 즐비하는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터이다. 이는 조세의 중립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다음으로 근로소득공제의 과다허용을 들 수 있다. 근로소득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비과세 혜택을 준다고 하여 저소득근로층에게 도움되는 일도 아니며, 국민개세주의의 원칙에도 반한다. 또한 원천징수로 마무리되는 근로소득과세는 세무행정의 간소화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될 수도 없다. 이러한 비과세 혜택은 하위 20% 계층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2011년 지방세 세목을 간소화하는 개정에서 종래의 재산세 최저세율을 크게 낮춘 개정은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일실만을 가져왔을 뿐이며, 보유세의 부담을 높여야 하는 기본원칙에도 반하는 일이었다. 이는 공평과세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또다른 예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의 한계선을 연간 4천800만원으로 올린 개정은 담세력이 있는 상당수 개인기업에게 합법적인 탈세를 조장하는 일이었다. 당초에 연간 1,200만원 기준이던 것을 몇 차례 개정으로 위와 같이 상향조정한 것은 제도를 왜곡시키는 커다란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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