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 근 <세영세무법인 고문․경영학박사>
정부가 지난 3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던 ‘세무검증제(성실신고확인제)’가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가운데 관련 사업자단체는 납세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세무검증제는 수입금액(매출액)이 일정 규모이상인 고소득자영업자가 세무신고 전에 세무사로부터 장부 검증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대상 사업자는 광업․도소매업은 연간 수입금액 30억 원 이상, 제조업․음식숙박업은 15억 원 이상, 부동산업․서비스업은 7억5000만 원 이상자이다. 세무검증을 받은 사업자에게는 검증비용 60% 세액공제(한도 100만원), 성실사업자에 준해 교육비․의료비 소득공제 허용, 종합소득세 신고기한 연장(다음해 5월말→6월말) 등 미미한 혜택이 주어진다. 반면에 대상 사업자가 세무검증을 받지 않을 경우 수입금액의 5%에 상당하는 미검증가산세 적용, 세무조사 강화, 부실검증 세무사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인센티브에 비해 불이익이 너무 크다. 고소득자영업자에 대한 공평과세로 공정사회를 구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납세자의 권익보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세법은 신고기한 전에는 과세당국이 아무런 세무간섭을 할 수 없고 신고기한이 지난 후 제한적으로 불성실혐의자를 가려 내 세무조사를 할 수 있는 ‘신고납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무검증대상자가 되면 종합소득세 신고기한(매년 5월 31일) 전에 사실상 세무조사와 다름없는 세무사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불이익이 따른다. 이는 신고납세제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
또한 국세기본법은 명백한 증거에 의한 세무조사사유가 없는 한 납세자의 기장과 신고는 성실한 것으로 추정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세무검증대상자는 개별 납세자별로 구체적인 증거에 의한 세무조사 사유가 없는데도 수입금액이 일정액 이상이라는 이유로 도매금으로 불성실혐의자로 분류된다. 세무검증제는 납세자의 권리인 ‘성실성추정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구태여 세무검증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행 세법상 고소득자에 대한 성실신고 유도장치는 많다. 현재 사업용 계좌 사용 의무, 세무조정제도, 영수증 미발행 시 과태료부과 및 보상금제도, 세금포탈 시 징역형과 벌금형, 세무사가 납세자의 탈세를 도운 경우 징역형과 벌금형 등이 도입돼 있다. 이러한 기존의 법과 제도를 잘 활용할 경우 세무검증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과잉규제’에 해당하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로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변호사․의사를 비롯한 관련 납세자단체는 세무조사와 다름없는 세무검증을 세무사에게 맡기는 것은 공권력을 민간에게 넘기는 것으로서 ‘세무검증제의 법적 효력’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계적으로 국세 또는 지방세 징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한 사례가 있고 우리나라도 이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업무의 효율성을 감안해 면허․허가․인가권 등을 비롯한 공적인 권한을 민간이 대행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정부와 국회는 공정사회 구현이라는 이유로 납세자의 반발에 눈 감아선 안 된다. 미검증가산세가 수입금액의 5%라면 매출액이 10억원인 사업자가 5000만원의 가산세를 물어야 하는데 가산세가 세금보다 많은 기현상(奇現象)을 초래할 수 있다. 세무검증은 세무검증대로 받고 또 다시 세무조사를 당할 개연성이 크다. 세무사의 경우 100만원의 보수를 받고 자격취소 또는 영업정지의 처벌을 당할 수 있으므로 검증업무를 기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예기치 않은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정부와 납세자 그리고 세무사가 상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납세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세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납세자와 세무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무검증제를 도입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다. 세무검증을 받은 납세자의 경우 검증비용 전액 필요경비 공제 및 구체적인 탈세 근거가 없는 한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 세무사의 경우 세무검증보수의 획기적인 증액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한 미검증가산세율 인하, 세무검증 업무상 고의적이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세무사의 처벌 제외 등 처벌수준의 하향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정부․납세자․관련 단체가 상생하는 세무검증제의 전제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