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내총생산(GDP)의 30~40%대에 달하는 세금을 내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는 유럽 재정위기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재정위기에 몰려 있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남유럽 국가들은 세금을 적게 거두고 빚을 얻어 복지를 늘리다 재정위기에 내몰렸다. 조세부담률(19.3%)이 낮은 가운데 복지를 늘려야 하는 우리나라는 남유럽 국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9.3%로서 남유럽 국가와 비슷한 수준에 있다. 우리나라가 남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지를 늘리는 게 최우선 과제다. 경제성장률이 4~5%일 때 연간 늘어난 복지 예산이 5~6조원 정도였다. 앞으로 상당기간 2~3%대의 저성장에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데 빚을 내지 않고 매년 수십조 원이 더 들어가는 복지재원을 감당하기란 어렵다. 국민대타협을 전제로 획기적인 복지구조 조정과 세금구조 개혁이 불가피하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세금구조 개혁은 ‘공평과 효율’ 그리고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세제 개편의 기본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세 부담을 늘리는 증세 순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래야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조세저항 없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세금구조 개혁의 출발점은 ’소득세 강화‘다. 소득세는 세(稅) 부담 능력의 지표인 ‘소득’이 커짐에 따라 높은 누진세율(현행 6~38%)이 적용된다. 공평하면서 소득재분배기능을 가진 이상적인 세금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38%)은 OECD 평균(35.8%)에 비해 높은 반면,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6%로서 OECD 평균(8.7%)보다 월등히 낮다. 이는 과세대상(세원)에서 빠져 있는 소득이 많음을 시사한다. 세율 인상에 앞서 주식매매차익, 부동산임대소득, 금융소득을 비롯한 자본이득을 중심으로 세원 확대가 선결과제다. 또한 지하경제•차명계좌•간이과세제를 이용한 탈세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도 시급하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낮추는 ‘조세경쟁(tax competition)시대’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7%로 OECD 평균(2.8%)을 웃돈다. 우리나라 법인세 부담률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 외자유치를 위한 경제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현행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한편 ‘재산’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부유세(富裕稅, wealth tax)’ 도입을 주장하는 정치권도 있다. 하지만 부유세는 조세저항•자본유출 등 비효율이 최대 단점으로 지적된다. 부유세의 원조인 스웨덴을 비롯한 대부분 유럽 국가가 이를 폐지했고, OECD 조차 폐지를 권고할 정도로 부유세는 구시대적 세금으로 전락했다. 부유세 성격인 종부세 도입으로 우리가 경험한 조세저항과 사회혼란을 간과해선 안 된다. 소득을 창출하는 재산에 과세되는 세금은 지방세로 하고 저(低) 세율을 적용하는 세제가 조세원칙에 맞고 세계적 추세다.
‘소비’에 과세되는 부가가치세는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 부담을 지는 ‘역진성’이 단점이다. 부가가치세 세율을 1%p 인상하면 5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별다른 조세저항 없이 막대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율(10%)은 독일(19%), 영국(20%), 스웨덴(25%)을 비롯한 복지선진국보다 월등히 낮다. 복지를 늘리려면 세율 인상이 필요함을 뒷받침한다. 다만, 복지구조 조정과 세출 절감, 세원확대에 의한 세수 확보가 먼저이고 세율 인상에 의한 증세는 최후 수단이다. 세제는 그 시대의 조류, 경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세제 개편으로 지난해보다 올해 세금이 늘어난 납세자는 당연히 증세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국민의 세 부담은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만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한다면 어느 국민이 이를 납득하겠는가. 정치권과 정부는 ‘복지를 더 누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솔직한 말로 국민을 설득하고 납세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도(正道)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길이다. 이래야 증세 없는 복지에 발목 잡혀 있는 정부가 국정 혼란을 극복하고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세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저성장시대에 재정 형편을 감안하지 않고 복지를 늘리면 ‘빚’내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꼴로 만드는 재정정책이다. 국민과 여야 정치권의 합의를 전제로 재정 형편을 감안해 복지 규모를 정하고 세금구조 개혁으로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세금과 복지 규모는 먼저 ‘중(中)부담 = 중(中)복지’를 실현한 다음, 재정 형편을 봐가면서 늘려 나가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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